프랑스와 프로이센의 파리의 혁명 정권 비스마르크 파리코믠
프랑스와 프로이센의 전쟁이 시작된 지 2개월 후 나폴레옹 3세가 프로이센 군의 포로가 되어 전쟁은 빠른 시간 안에 프랑스의 패배로 끝나게 되고 프랑스는 프로이센에게 항목하고 철혈 재상 비스마르크 앞에 무릎을 꿇게된다.
1871년 1월, 전쟁에서 승리한 프로이센은 프랑스의 베르사유 궁전 내 거울의 방에서 독일 제국의 성립을 선언하고 오랫동안 바랏던 통일을 이루게 된다. 하지만 프랑스 시민과 노동자들의 독일인에 대한 감정은 매우 좋지 않아서 항복을 받아 들일 수 없었고, 프로이센의 다스림을 받지 않는 자기들만의 혁명 정권을 만들려고 한다.
이에 프로이센은 프랑스 정부에게 프랑스 시민들이 혁명정권을 만들지 못하게 하라고 명령하는데, 이에 명력을 따를 수 밖에 없었던 프랑스 정부는 노동자의 시민들을 타일렀지만 말을 듣지 않자 그들을 향해 총과 대포를 쏘았다.
그러자 프랑스 시민들과 노동자들도 정부를 공격하여 정부와 혁명 정권 사이에 싸움이 벌어지고 되었다. 프랑스 정부는 혁명 정권의 공격을 막아낼 수 없어 수도인 파리에서 쫓겨났다. 이것은 프랑스 시민과 노동자들에 의해 파리에 세워진 혁명 정권인데 이를 가리켜 #파리코믠 이라고 한다.
#파리코믠 은 대부분 파리의 소시민과 노동자들로 이루어졌는데 프랑스는 이들이 정치를 하는 나라가 되었다. 그들은 가난한 사람들의 생활을 보장하고 노동자가 공장을 관리하는 등 새로운 법을 만들고 또한 모두가 똑같이 일하고 똑같이 나누의 갖는 사회주의를 원했다.하지만 파리코믠은 군사적 지휘가 통일되지 못하여 일 주일 동안의 격전 끝에 프랑스 정부군에 의해 무너지고 말았으며, 이로 인하여 뒷날의 혁명 운동이 뒷걸음질치게 되었다.